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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ration · AI 시대 일하기

AI가 끌어올린 바닥,
우리의 천장은 어디인가

1839년, 사진기가 발명되었을 때 회화는 죽지 않았습니다. 천장이 더 높이 올라갔을 뿐입니다. AI 앞에 선 지금 우리에게도 같은 길이 열려 있습니다.

큐레이션 · CDSA 편집팀  ·  원문 최홍찬 (Brunch) 2026. 5. 8

"사진기가 발명되었으니 이제 회화는 죽었다." 1839년, 프랑스 화가 폴 들라로슈가 다게레오타이프 사진을 처음 본 자리에서 남겼다고 전해지는 말입니다. 한 시대의 기술이 한 시대의 직업과 예술을 통째로 지워버릴 것이라는 단언.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듯이 회화는 죽지 않았습니다. 사진이 "현실을 모방하는" 일을 가져가자, 화가들은 인상주의를 열고, 무의식과 추상의 영역으로 들어가 새로운 천장을 끌어올렸습니다.

최근 한 글이 그 일화에서 출발해 우리에게 비슷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구글의 테크 리드 매니저이자 W3C 오디오 워킹 그룹 의장으로 일하고 있는 최홍찬이 자신의 브런치에 올린 글입니다. 1990년 MIDI 시퀀서에 매료되어 음악과 코드의 경계를 20년 넘게 오갔고, 2009년 스탠퍼드 컴퓨터음악 연구소에서 박사를 받은 뒤 2014년 구글에 합류해 지금은 글로벌 웹 표준 제정을 주도하면서 동시에 스탠퍼드에서 차세대 뮤직 테크놀로지스트들을 가르치고 있는 사람입니다.

실리콘밸리의 가장 안쪽에서 AI를 매일 마주하는 그가, 같은 산업의 동료들과 나눈 대화 속에서 길어 올린 세 가지 화두를 정리했습니다. FOMO를 다스리는 법, 책임은 외주화할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점점 더 중요해지는 비판적 사고력. 한국 독자의 자리에서 다시 읽어볼 만한 통찰이라, CDSA 블로그에 옮겨 정리합니다.

01 / 첫 번째 화두FOMO — 두려움은 외부가 아니라 내면에 있다

최홍찬이 가장 먼저 짚은 것은 우리 모두가 느끼는 그 감정이었습니다. "뒤처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흔히 FOMO라 부르는 감정입니다. 그런데 그가 적어 내려간 풍경은 의외였습니다. 이 두려움은 일반인의 것이 아니라, AI 최전선에서 모델을 만들고 있는 엔지니어들 사이에서도 똑같이 흐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매주 새로운 논문이 쏟아지고, 어제까지 최첨단이었던 기술이 다음 주면 진부해지는 환경에서, 가장 빠른 사람들조차 "내가 따라가고 있는 것이 맞나"를 묻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한 가지 사실을 강조합니다. 이 감정은 외부의 위협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면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점. 다시 말해 외부 환경을 통제할 수는 없어도,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같은 강도의 정보 폭우 앞에서도, 누군가는 익사하고 누군가는 수영을 배웁니다. 차이는 정보의 양이 아니라 그것을 마주하는 자세에 있습니다.

그가 권하는 첫 번째 자세는 혼자 따라가지 않는 것입니다. 소셜 피드와 논문을 혼자 헤쳐 나갈 때 느끼는 압박감과, 팀원이나 스터디 그룹에서 함께 읽고 토론할 때 느끼는 안도감은 강도가 전혀 다르다고 말합니다. 학습은 본질적으로 사회적 행위인데, 우리는 너무 자주 그것을 고독한 사투처럼 만든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자세는 모든 트렌드를 다 잡으려 하지 않는 분별입니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MCP, 새로운 프레임워크 — 이런 최신 기술들의 상당수는 불완전한 AI를 임시로 제어하기 위한 일종의 보조 장치이며, 모델이 발전하면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라고 그는 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깊게 파고들 필요는 없고, 어떤 흐름이 일시적이고 어떤 흐름이 구조적인지를 분간하는 안목이 더 중요해진다는 이야기입니다.

세 번째는 자극적인 콘텐츠에 반응 본능을 빼앗기지 않는 일입니다. "이거 모르시나요?"로 시작하는 피드는 우리의 불안을 연료 삼아 클릭을 끌어내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거기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지금 내 손에 놓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만큼만 취사선택하는 냉정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02 / 두 번째 화두커리어 — AI가 바닥을 올려도, 천장은 사람의 영역이다

두 번째로 그가 던진 질문은 더 묵직합니다. AI가 점점 잘하게 되는 영역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그가 내놓은 답은 단순하지만 깊은 표현이었습니다. AI는 바닥을 올리고, 인간은 천장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

지난 몇 년간 우리가 본 변화는 분명합니다. 코드 자동완성, 문서 요약, 이미지 생성, 1차 분석. 예전이라면 신입사원이 오래 시간을 들여야 했던 작업들의 평균 품질이 가파르게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그가 짚은 지점은 다음 단계입니다. 바닥이 올라온 만큼, 그 위에 사람만이 도달할 수 있는 영역과의 간격이 더 의미 있어진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그는 오랫동안 거론되어 온 T자형 인재의 가치를 다시 호명합니다. 깊은 도메인 전문성으로 AI가 내놓은 결과를 검증할 수 있고, 동시에 넓은 시야로 전체 시스템을 이해해 AI를 어디에 어떻게 쓸지 기획할 수 있는 사람. 양쪽이 모두 사라지지 않은 상태에서, 한쪽 깊이가 깊어질수록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천장이 높아진다고 봅니다.

AI가 99.9%를 완벽하게 수행해도, 0.1%의 오류는 반드시 발생합니다. 그 결과에 대한 최종 책임은 인간이 집니다.

그가 가장 길게 강조한 것은 책임의 문제였습니다. AI는 결과물을 생산할 수 있지만, 결과에 대한 책임을 외주화할 수는 없다는 사실. 의료 현장에서 AI가 진단을 보조하더라도 최종 서명은 의사의 몫이고, 법률 문서를 AI가 초안하더라도 그 문서의 무게는 결국 변호사가 짊어집니다. 기업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보고서가 AI로부터 출발했어도, 그것을 임원에게 들이밀고 결재 라인을 통과시키는 사람의 이름이 거기에 적힙니다.

그래서 그는 한 가지 전략적 권고로 옮겨갑니다. 바닥이 올라올수록, 실행을 지도하고 결과를 승인하는 책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의 가치는 오히려 더 높아집니다. 이 자리에서 오너십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일이, 길게 보면 AI 시대를 사는 가장 견실한 커리어 전략이 됩니다.

03 / 세 번째 화두비판적 사고력 — 좋은 질문, 그리고 인지 부채

세 번째 화두는 어쩌면 가장 익숙하지만, 가장 자주 빠뜨리는 것입니다. 비판적 사고력. 너무 많이 들어 진부해진 단어이지만, 최홍찬은 이것을 AI 시대의 가장 핵심적인 역량으로 지목합니다.

그는 먼저 좋은 답은 좋은 질문에서 나온다는, 어쩌면 너무 당연한 사실을 다시 꺼냅니다. 그러나 이때 좋은 질문이라는 것은 단순히 똑똑해 보이는 질문이 아닙니다. 주제에 대한 이해도,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한 의지, 그리고 맥락을 파악하는 감각이 모두 결합되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의도성 없는 질문은 그저 검색창을 한 번 더 두드리는 행위에 머물고 맙니다.

표면이 매끈할수록 더 의심해야 합니다. AI의 결과물은 종종 그 매끈함 자체로 비판적 시선을 마비시킵니다.

그가 더 무겁게 짚은 것은 인지 부채(cognitive debt)라는 개념이었습니다. 자신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물을 그대로 가져다 쓰기 시작하면, 당장은 일이 빨리 끝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자산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비어가는 상태에 도달합니다. 코드를 짰는데 그 코드를 설명할 수 없고, 보고서를 냈는데 그 안의 숫자가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상태. 이 부채는 어느 날 한 번에 청구되며, 그때는 회복이 어렵습니다.

이 위험을 막기 위해 그는 한 가지 원칙을 권합니다. 자신이 만들어 낸 AI 산출물을 온전히 이해할 책임을 끝까지 놓지 않는 것. AI에게 작업을 맡기더라도, 결과물을 자기 언어로 다시 한번 풀어 설명할 수 있을 때까지 들여다본다는 자세입니다. 빠른 사고는 AI의 몫이지만, 사유의 마찰은 사람이 일부러 보존해야 합니다. 깊이 있는 사고는 마찰 안에서만 자라기 때문입니다.

04 / 닫는 말인상주의가 열린 자리에서

글의 마지막에서 최홍찬은 다시 1839년의 풍경으로 돌아옵니다. 사진기가 회화의 기초적 기능을 가져갔을 때, 화가들에게 닥친 첫 감정도 우리와 비슷했을 것입니다. 두려움, 자조, 그리고 자기 직업에 대한 회의. 그러나 시간이 지난 뒤 우리가 미술사에서 만나는 풍경은 다릅니다. 모네, 세잔, 고흐는 사진기가 모방할 수 없는 자리에서 새로운 미술을 열었습니다. 회화의 천장이 한 단계 위로 올라간 것입니다.

AI 앞에 선 우리에게도 같은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습니다. AI는 패턴에 최적화된 결과를 빠르게 내놓습니다. 그러나 전례가 없는 상황에서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판단하고, 무엇이 진정으로 가치 있는지 결정하는 일은 여전히 인간의 몫입니다. 변화의 속도에 패닉하기보다, 자기 분야에서만 닿을 수 있는 천장이 어디인지를 분명히 하고, 그 영역을 끊임없이 넓혀 가는 자세가 답이라는 이야기입니다.

한 가지 덧붙일 만한 것이 있다면, 오랫동안 변두리로 밀려나 있던 인문학적 사고와 비판적 역량이 다시금 무대 중앙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점입니다. 도구가 강해질수록, 도구를 부리는 사람의 분별이 더 중요해집니다. AI 시대에 가장 빨리 진부해질 자세는 모든 트렌드를 따라잡는 자세이고, 가장 늦게 진부해질 자세는 자기 분야의 천장을 견고히 지키며 그 위로 한 발 더 올라가려는 자세입니다.

실리콘밸리의 한가운데에서 일하면서, 음악에서 기술로의 큰 전환을 직접 통과해 본 사람이 우리에게 들려준 이 세 가지 화두는, 한국에서 AI를 도구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도 그대로 닿습니다. 바닥이 어디까지 올라왔는지를 살피는 일은 이미 충분히 많이 했습니다. 이제 천장을 다시 그릴 차례입니다.

출처 · 본 글은 구글 테크 리드 매니저 최홍찬이 자신의 브런치(brunch.co.kr/@hongchanchoi)에 올린 "AI가 끌어올린 바닥, 우리의 천장은 어디인가? 대화 속에서 찾아낸 세 가지 화두"를 바탕으로 합니다. 국내 개발자 커뮤니티 긱뉴스(news.hada.io)에서 이 글이 공유되며 토론된 내용을 함께 참고했습니다. CDSA 편집팀이 한국어 독자의 맥락에서 산문체로 다시 정리했으며, 핵심 통찰과 사례는 모두 원저자에게 귀속됩니다. 원문을 직접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